시장을 짓누르던 두 개의 그림자, 동시에 걷히다
우선, 2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진지하게 대화 중(seriously talking)"이라고 밝히면서 미국-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소식에 국제 유가는 단숨에 5% 급락하며 브렌트유는 배럴당 66달러, WTI는 62달러 수준으로 내려왔다. 이는 단순한 원자재 가격 하락을 넘어,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시장에서 제거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신호다. 립아우 오일 어소시에이츠의 앤드루 립아우 대표는 "워싱턴과 테헤란이 중재자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보도가 유가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며, "이란의 지역 분쟁 위협이 실현될 경우 유가가 급등할 수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막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유가 안정은 기업의 생산 비용 절감과 소비자의 구매력 증대로 이어져 실물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BCA 리서치의 마르코 파픽 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가 70~80달러로 오르면 중간선거를 앞두고 입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유가 변동이 미국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중요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동시에 대서양 반대편에서는 무역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2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통화 후 양국 간 무역 협정 타결을 발표했다. 미국은 인도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50%에서 18%로 즉각 인하하고, 인도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인도는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중단하고 대신 미국산 석유를 "훨씬 더 높은 수준(significantly higher level)"으로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시장의 오랜 우려를 일부 해소하고, 글로벌 교역 환경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유럽 증시는 이 소식에 힘입어 범유럽 STOXX 600 지수가 장중 최고점을 기록하며 사상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난해 4월 저점 이후 33% 상승한 STOXX 600은 연초 이후 상승 모멘텀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투자 심리가 급격히 개선되면서 자금이 위험자산으로 빠르게 유입되는 '리스크-온(Risk-on)' 장세가 명확하게 펼쳐진 것이다
랠리의 본질: 펀더멘털로의 귀환
이번 랠리가 단순한 '안도 랠리'를 넘어설 가능성을 보이는 이유는 견고한 경제 펀더멘털의 확인에 있다. 거시적 악재들이 걷히자, 그동안 가려져 있던 미국 경제의 단단한 체력이 비로소 시장에 제대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2월 3일 발표된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1월 제조업 지수는 52.6을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47.9)를 크게 상회했다. 이는 12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준선인 50을 넘어서며 제조업 부문이 확장세로 전환했음을 의미하고, 2022년 8월 이후 3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신규 주문과 생산 부문이 모두 개선되면서 수요의 회복력이 확인됐다.
이 소식은 뉴욕 증시를 직접적으로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상승세를 주도했고, 반도체와 AI 인프라 관련 주식들이 전주 손실을 만회하며 시장을 견인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시장의 관심이 외부의 돌발 변수에서 경제의 내재 가치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지정학적 긴장과 무역 분쟁이라는 외생 변수가 시장을 지배할 때는 기업의 실적이나 경제 지표가 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투자자들은 기업들의 실제 이익 창출 능력과 경제의 성장 잠재력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견고한 제조업 지표는 이러한 펀더멘털 중심의 투자 환경이 조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구조적 상승의 시작인가, 일시적 반등인가
따라서 이번 상승장은 외부 충격에 대한 일시적 반등이 아닌, 경제의 실질적인 체력을 기반으로 한 구조적 상승의 초입일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다만 시장 전문가들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스티브 소스닉 애널리스트는 "유럽 증시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모멘텀이 지속되고 있다는 신호"라면서도, "개별 뉴스보다는 전반적인 분위기 개선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시장의 향방은 거시적 불확실성의 재발 여부보다, 연속적으로 발표될 경제 지표의 질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제조업 회복이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성장의 신호탄인지는 향후 고용 지표와 소비 데이터를 통해 검증될 필요가 있다. 시장은 이제 외부 리스크가 아닌 실물 경제의 실체에 베팅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펀더멘털 중심의 투자 환경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가 2026년 증시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