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AI에서 일하는 AI로,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
AI 시장의 판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AI는 질문에 답하고 글을 써주는 도구였다. 그런데 이제는 사용자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컴퓨터를 조작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지난 2월 15일, OpenAI CEO 샘 알트먼은 이 흐름을 상징하는 발표를 했다. PC를 스스로 조작해 실제 작업을 처리하는 AI 에이전트를 만든 오스트리아 개발자 피터 스타인버거가 OpenAI에 합류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인재 영입이 아니라, 그의 프로젝트인 OpenClaw는 OpenAI가 지원하는 독립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계속 운영된다.
스타인버거의 OpenClaw가 주목받은 이유는 숫자가 설명한다. 개인 프로젝트로 시작한 이 에이전트는 출시 일주일 만에 사용자 200만 명을 끌어모으고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사용자의 PC에 상주하며 파일을 열고 코드를 실행하는 방식이라 보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위험하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시장은 안전성보다 가능성에 먼저 반응했다. OpenAI 역시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5년 1월 웹 브라우저를 대신 조작해주는 Operator를 출시하고 7월에는 이를 ChatGPT 에이전트로 발전시켰다. 그럼에도 이번 합류 결정은,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외부 혁신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앤트로픽의 역습, 에이전트 생태계로 정면 돌파
OpenAI가 외부에서 인재를 수혈하는 동안, 앤트로픽은 자체 기술로 조용히 격차를 좁히고 있다. 지난 2월 공개된 신모델 Claude Opus 4.6은 금융·법률처럼 실제 돈이 오가는 전문 업무를 AI가 얼마나 잘 처리하는지 평가하는 GDPval-AA 벤치마크에서 OpenAI의 최신 모델을 144점 차이로 제쳤다. 단순 언어 능력이 아니라 실제 업무 처리 능력에서 앞선다는 점이 핵심이다.
앤트로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월 12일에는 PC에서 파일을 열고 앱을 직접 조작하는 데스크톱 에이전트 Claude Cowork를 맥OS용으로 먼저 선보였고, 개발자 도구 Claude Code에는 긴 프로젝트를 사람 없이도 끝까지 스스로 수행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현재는 맥OS 전용이지만 윈도우 버전이 2026년 중반 출시 예정으로, 전 세계 PC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윈도우 사용자층으로 본격 확장하는 시점이 이 경쟁의 또 다른 분기점이 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양손잡이 전략, OpenAI 독주 시대의 균열
이 구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다. OpenAI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한 최대 주주이면서도, 최근 경쟁사인 앤트로픽과의 협력을 노골적으로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AI 부문 대표 무스타파 술레이만은 특정 AI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기술력을 갖추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말뿐이 아니었다.
지난 1월 22일, 마이크로소프트는 Windows·Office·Teams·Surface 등 전 사업부 엔지니어 수천 명에게 자사의 주력 개발 도구 GitHub Copilot과 앤트로픽의 Claude Code를 나란히 써보고 성능을 직접 비교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자사 제품과 경쟁사 제품을 같은 테이블에 올려놓은 이 결정은, 앤트로픽 기술이 내부 검증을 통과할 만큼 실력이 있다는 사실상의 인정이다. 여기에 앤트로픽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 Azure를 300억 달러 규모로 사용하기로 계약하며, 두 회사의 관계는 단순한 협력을 넘어 서로가 필요한 공생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구글의 가세, 에이전트 전쟁의 전선 확대
구글은 2024년 11월 자사 AI 에이전트 기술이 실수로 외부에 노출되는 해프닝을 겪은 뒤, 이를 Project Mariner라는 공식 제품으로 정비해 2025년 5월 구글 개발자 행사에서 일반에 공개했다. 이 에이전트는 별도 앱 없이 크롬 브라우저 안에서 웹페이지를 직접 탐색하고 업무를 처리한다. 실제 웹 환경에서 AI가 업무를 얼마나 스스로 수행하는지 테스트하는 WebVoyager 평가에서 83.5%의 성공률을 기록하며, 실험실 수준을 넘어 실사용이 가능한 단계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글은 이 기술을 검색과 Gemini 앱에 순차적으로 통합할 계획이다. 크롬과 구글 검색을 매일 쓰는 수십억 명의 사용자를 에이전트 서비스의 진입점으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다른 어떤 회사도 갖지 못한 규모의 분배망을 무기로 내세운 셈이다.
에이전트 플랫폼 전쟁, 투자자가 봐야 할 진짜 신호
AI 경쟁의 본질이 바뀌었다.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는 싸움이 아니라, 사용자의 실제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는 에이전트 플랫폼을 누가 먼저 장악하느냐의 싸움이다.
이 전환은 수익 구조까지 바꾼다. 대화형 AI는 월 구독료가 매출의 전부였다. 하지만 에이전트 AI는 처리한 작업의 수와 복잡도에 따라 과금한다. 쉽게 말해, 에이전트가 더 많이 일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번다. 기업 고객 한 명이 지불하는 금액의 상한선이 구독 모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흐름에서 가장 예리하게 봐야 할 신호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내 비교 실험이다. OpenAI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은 최대 투자자가, 자사 엔지니어들에게 경쟁사 도구를 직접 써보라고 지시했다. 이는 단순한 리스크 분산이 아니다. OpenAI의 기술이 더 이상 압도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내부의 솔직한 인정이고, 앤트로픽이 실제 업무 현장에서 OpenAI를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경쟁자로 올라섰다는 신호다. 지금 시장이 OpenAI에 매기고 있는 프리미엄 밸류에이션이 이 균열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