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 SaaS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을 흔들다
최근 소프트웨어 업계를 강타한 주가 폭락 사태는 AI가 기존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위협하는 '파괴자'로 부상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투자 전문 매체들은 이를 'SaaSmageddon(SaaS와 아마겟돈의 합성어)'이라 부르며,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AI가 SaaS를 기술적으로 대체하는 구조적 변화로 진단하고 있다.
이번 SaaSmargeddon의 진원지는 앤트로픽이 2026년 1월 12일 출시한 데스크톱 AI 에이전트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다. 파일 관리와 다단계 작업 자동화 등 기존 SaaS 플랫폼의 핵심 기능을 대체할 잠재력을 지닌 이 도구는 macOS 전용으로 출시되었다가, 최근 윈도우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구글 역시 1월 27일 제미나이 3 기반 '오토 브라우즈(Auto Browse)' 기능을 크롬에 통합해 자동화된 웹 작업 처리를 가능하게 했으며, 2월 4일 실적 발표에서 CEO 순다르 피차이는 "제미나이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AI 엔진이 되고 있다"며 상위 20개 SaaS 기업 중 95%가 제미나이를 채택했다고 밝혔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온라인 법률 서비스 플랫폼 리걸줌의 주가는 2월 2일 앤트로픽이 클로드 코워크용 법률 플러그인을 출시한 직후 19.3% 폭락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6개월간 앤트로픽과 협력해 거래 회계 및 고객 실사 업무를 자동화하는 AI 에이전트를 개발 중이며 '곧' 출시할 예정이다. 데이터브릭스 CEO 알리 고드시는 "SaaS는 죽지 않았지만, AI가 곧 이를 무관하게 만들 것"이라며, 인터페이스가 자연어로 바뀌면 제품들이 배관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이러한 위협론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CEO 맷 가먼은 소프트웨어 업계의 AI 공포가 과장됐다고 일축하며, AI가 기존 소프트웨어를 보완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리걸줌의 CEO 역시 AI를 기존 플레이북을 바꾸는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에는 AI를 수용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전통적인 SaaS 기업들이 고전하는 동안, 버티컬 AI 스타트업 WINN.AI는 2월 11일 시리즈 A에서 1,800만 달러를 유치하며 2년간 30배 성장을 기록했다. 이는 자본이 '새로운 승자'를 찾아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협인가 기회인가: 거대 기업들의 엇갈린 시선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앤트로픽은 2월 11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최신 모델 클로드 오푸스 4.6이 화학 무기 개발 지원, 무단 이메일 발송, 기만 행동 등 우려스러운 행동을 보였다고 밝혔다. 구글의 제미나이 딥 씽크 역시 생화학·핵·화학·방사능(CBRN) 분야의 위험한 지식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비슷한 우려를 낳고 있다. 구글은 CCL(Critical Capability Levels) 프레임워크를 통해 이러한 위험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모델의 능력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안전 장치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앤트로픽의 AI 안전 연구 책임자 므리낭크 샤르마가 2월 9일 "세계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경고를 남기고 사임한 사건이다. 그는 "가치가 행동을 이끌도록 하는 것이 어려웠으며, 가장 중요한 것을 무시하라는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았다"고 토로하며 영국으로 돌아가 시를 공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윤리적 통제 장치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레이어 전쟁과 새로운 투자 법칙
현재 주목해야 할 핵심 포인트는 바로 레이어 전쟁의 시작이다. AI 에이전트는 단순히 기존 SaaS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소프트웨어 사이에 새로운 인터페이스 레이어를 삽입하고 있다. 클로드와 제미나이 같은 AI 에이전트가 사용자 의도를 해석하고 여러 SaaS 도구를 백엔드에서 조율하는 구조에서, 최종 고객과의 접점을 누가 장악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구글이 상위 SaaS 기업의 95%에 제미나이를 침투시킨 것은, 향후 이들 기업의 고객 관계를 구글이 중개하게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투자 전략은 단순히 'AI를 도입했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AI 레이어 위에서 작동하는가'로 재편되어야 한다. 자체 AI 에이전트로 고객 접점을 방어하거나, 특정 산업 도메인에서 대체 불가능한 데이터와 워크플로를 구축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동시에 앤트로픽과 구글의 안전성 논란은, AI 기업에 대한 규제 리스크가 급격히 증가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생산성 혁명의 과실을 추구하되, 윤리적·안전적 위험이 현실화될 때 자본이 어떻게 이동할지에 대한 시나리오 플래닝이 필수적인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