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비디아의 주가가 정체기를 보이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 설비투자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AI 칩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의 주가는 실적 발표를 앞두고 190달러 선에서 횡보하는 모습이다. 이는 전형적인 '뉴스에 팔아라' 심리일까, 아니면 성장의 정점에 다다랐다는 신호일까.
시장의 우려와 달리 엔비디아의 펀더멘털은 단순한 칩 판매를 넘어 추론 시장의 경제성 확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밸류에이션 매력까지 갖춰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엔비디아의 진짜 내러티브는 무엇일까.
10배 이상 상승했지만 오히려 저렴해진 밸류에이션
시장 참여자들은 엔비디아 주가 그래프의 가파른 기울기에 공포를 느낀다. 2022년 11월 챗GPT가 공개된 이후 엔비디아 주가는 약 15달러 수준에서 12일 종가기준 187달러로 10배 이상 폭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가의 절대적 높이만 보고 거품을 논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왜냐하면 주가 상승 속도보다 이익 증가 속도가 훨씬 더 빨랐기 때문이다. 현재 엔비디아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챗GPT가 처음 세상에 나왔던 2022년 말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2024년 회계연도 4분기에만 EPS가 전년 대비 765% 성장하고, 매출은 265% 증가하는 등 폭발적인 이익 성장이 밸류에이션 부담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는 엔비디아 주식이 단순한 투기적 광풍이 아니라 실적이 뒷받침하는 압축 성장 구간에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의 주가 정체는 고평가 해소가 아니라 추가 상승을 위한 에너지 응축 과정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추론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추는 기술력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AI 모델 학습 수요가 끝나면 엔비디아의 매출 절벽이 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이미 무게중심을 추론 시장으로 빠르게 옮기고 있으며, 여기서 만들어내는 비용 절감 효과는 파괴적이다. 엔비디아의 발표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블랙웰 플랫폼과 오픈소스 모델 최적화를 통해 AI 추론 비용을 기존 대비 최대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하드웨어 성능 개선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스택 최적화가 결합된 결과다.
특히 주목할 기술은 엔비디아가 새롭게 공개한 동적 메모리 희소화(Dynamic Memory Sparsification, DMS)다. 벤처비트 보도에 따르면 이 기술은 거대언어모델이 복잡한 추론을 수행할 때 발생하는 메모리 비용을 정확도 손실 없이 최대 8배까지 절감시킨다. DMS는 트랜스포머 모델이 사용하는 KV 캐시를 지능적으로 압축하면서도 단 1,000 스텝의 최소한 재학습만으로 기존 모델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AI 서비스 기업들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가장 큰 요인인 운영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주는 기술적 해자로 작용한다. 엔비디아는 단순히 칩을 파는 것을 넘어 고객사가 AI 서비스를 지속 가능하게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생태계 내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차세대 로드맵의 구체화: 루빈(Rubin)과 HBM4
공급망 측면에서도 차세대 제품 준비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인 베라 루빈(Vera Rubin)을 위한 HBM4 메모리를 2026년 2월 업계 최초로 양산 출하하기 시작했다. 이는 현재 주력인 H100, H200이나 곧 출시될 블랙웰을 넘어 2026년 이후를 책임질 루빈 아키텍처의 공급망이 이미 가동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SK하이닉스와 함께 삼성전자가 HBM4 공급을 주도하면서 엔비디아의 차세대 제품 로드맵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더불어 TSMC가 2026년 1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면서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용 GPU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는 공급망 전반에 걸쳐 AI 반도체 수요가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실적과 주가의 일시적 괴리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메타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일제히 AI 관련 지출을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도 6,600억 달러 규모의 캐펙스 확대가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수요처인 고객사들이 지갑을 더 열겠다고 하는데 공급자인 엔비디아의 주가가 주춤하는 현상은 실적 발표를 앞둔 시장의 과도한 경계심이 만들어낸 일시적 괴리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엔비디아의 오픈AI 투자 지연 소식이 전해지면서 AI 거품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점은 단기 변동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개별 투자 건의 재검토일 뿐 엔비디아의 핵심 사업과는 무관한 이슈다.
엔비디아는 이제 비싼 칩을 파는 회사에서 가장 저렴하게 AI를 구동시켜 주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학습 시장에서의 독점을 추론 시장에서의 비용 효율성으로 전이시키고 있는 엔비디아의 전략은 경쟁사들이 단순히 칩 성능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격차를 만들고 있다. 투자자들은 당장의 주가 등락보다는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추론 비용 하락이 가져올 시장의 파이 확장에 주목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