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발 수요 폭증이 촉발한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거대한 파장을 동반한다. 공급 부족이 AI 서버용 고성능 메모리를 넘어 스마트폰과 같은 일반 소비자 기기 시장으로 전이되면서 전례 없는 가격 인상을 유발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국이 장악한 메모리 시장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중국에게는 예상치 못한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AI가 촉발한 공급난, 스마트폰 시장 덮쳐
이번 슈퍼사이클의 진원지는 단연 AI다. CNBC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AI 붐으로 인한 글로벌 메모리 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싱가포르 공장에 24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이는 현재의 공급망이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막대한 메모리 수요를 감당하기 벅차다는 명백한 증거다.
문제는 이 공급난의 여파가 AI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아이폰용 LPDDR 메모리 가격을 전 분기 대비 각각 80%, 100% 가까이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HBM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자원이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모바일 D램의 공급이 줄어든 결과다. 이는 AI 기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반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가격 인상이라는 형태로 AI 붐의 비용을 전가받게 되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슈퍼사이클의 그림자, 중국의 부상
더욱 심층적인 함의는 지정학적 경쟁 구도에서 발견된다. 디지타임스는 이번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중국이 한국에 도전할 문을 열어주고 있다고 경고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HBM 시장에 역량을 총동원하는 동안, 그들이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CXMT(창신메모리)와 같은 후발주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기술 장벽이 낮은 레거시 D램이나 낸드플래시 생산을 확대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 격차를 좁혀나가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초격차' 기술로 눈앞의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사이, 중국은 시장의 기반을 잠식하며 장기적인 위협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이번 슈퍼사이클은 한국 메모리 산업에 기록적인 호황을 선물하는 동시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도전자의 부상이라는 두 가지 심각한 과제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