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경제, 성장기인가 성숙기인가?

앤트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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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경제는 거품이 걷힌 뒤 조정기를 지나 실행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는 실질적인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생명력을 검증받는 진정한 의미의 실행기에 들어선 것이다.

글로벌 수소 시장을 둘러싼 논쟁은 흔히 성장의 속도에 매몰되곤 한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진실은 수소 경제가 단순한 '성장기' 혹은 '성숙기'라는 이분법적 틀에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난 2024년과 2025년은 수소 산업에 있어 거대한 장밋빛 환상이 걷히고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기 시작한 ‘현실 점검(Reality Check)’의 시기였다. 신규 프로젝트 발표가 80% 급감하고 거대 에너지 기업들이 줄줄이 투자 철회를 선언한 현상은 언뜻 산업의 퇴보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 과열된 거품이 빠지며 실질적인 실행(Execution)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네덜란드 ING가 지적했듯 지금의 변화는 실패가 아니라 '발표에서 실행으로의 전환'이며, 수소 경제는 이제 기술적 호기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철저한 경제성 증명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지역별 수소 전략 분화

수소 경제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지역별로 뚜렷하게 갈리는 전략적 분화에서 나타난다. 과거의 수소 시장이 '누가 더 깨끗한 수소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것에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시장은 '누가 더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선점하느냐'는 생존의 문제로 이동했다. 미국은 풍부한 천연가스와 탄소 포집 기술을 결합한 블루수소를 통해 실질적인 단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반면 유럽은 그린수소에 대한 명분을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산 저가 장비를 견제하는 요새화 전략을 선택했다. 이러한 지역별 분열은 수소 시장이 전 지구적 협력 모델에서 자국 산업 보호와 에너지 안보를 우선시하는 각자도생의 무대로 변모했음을 의미한다. 독일 티센크루프가 그린철강 입찰을 보류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기술적 가능성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경제성 확보이며 이는 수소 경제가 기술의 낭만을 버리고 비정한 시장의 논리를 수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기술에서 금융 게임으로의 전환

수소 산업의 패러다임은 이제 '기술 혁신'에서 '금융 구조(Bankability)'로 완전히 이동했다. 지난 수십 년간 시장은 전해조의 효율을 몇 퍼센트 더 높일 것인가에 매몰되었으나, 플러그파워(Plug Power)가 28년간 단 한 번의 흑자도 기록하지 못한 채 거대한 손실을 낸 사례는 기술력만으로 시장의 신뢰를 살 수 없음을 증명했다. 2026년의 수소 프로젝트는 더 이상 실험실의 결과물이 아니라 20~30년이라는 장기 투자 회수 경로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싸움이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 역시 단순한 보조금 지원을 넘어 금융 위험을 직접 분담하는 리스크 셰어러(Risk Sharer) 로 진화하고 있다. 일본의 장기 가격 보장 방식(CfD)이나 독일의 수소 사용 의무화 정책은 정부가 금융 위험을 함께 떠안음으로써 민간 자본의 진입을 유도하는 고도의 금융 설계다. 결국 미래 수소 패권은 가장 효율적인 스택을 만드는 국가가 아니라, 가장 안정적인 금융 회수 모델을 설계 하여 자본의 흐름을 통제하는 국가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수소 경제는 성장의 둔화가 아니라, 거품을 걷어내고 실질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건강한 조정기를 지나고 있다. 수소 경제는 이제 성숙기에 접어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생명력을 검증받는 진정한 의미의 실행기에 들어선 것이다. 기술적 유토피아를 꿈꾸던 시기는 끝났다. 이제는 누가 더 정교한 금융 모델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2030년대 수소 경제의 패권이 결정될 것이다.

Ant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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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 Kim수석연구원Blog

기술경영학 석사, 글로벌 테크 기업의 기술 가치와 시장 지배력을 심층 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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