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패권, '붙이는 기술'에서 갈린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의 무게중심이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넘어 차세대 통합 기술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그 선두에 있는 것이 바로 '하이브리드 본딩'이다. 이 기술은 칩과 칩 사이를 솔더볼 없이 직접 구리(Cu)로 연결하여 데이터 전송 속도와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는 혁신으로, 사실상 TSMC가 독주해 온 첨단 패키징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TSMC와의 정면 대결을 선언하며 차세대 낸드플래시에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을 우선 적용하고, 이후 HBM과 파운드리까지 확대 적용할 전용 라인 구축에 나섰다. SK하이닉스 역시 삼성전자와 함께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으며, 양사 모두 엔비디아의 차세대 제품에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HBM 시장을 개척한 한국 기업들이 이제는 '칩을 붙이는' 방식 자체를 혁신하며 패권 굳히기에 나선 형국이다.
더 먼 미래를 향한 포석, '강유전체'
하이브리드 본딩이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전장이라면, '강유전체(Ferroelectrics)'는 더 먼 미래를 내다본 기술적 포석이다. 강유전체 소자는 기존 D램보다 집적도가 높고 처리 속도가 빠르면서도 전력 소모는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AI 시대에 최적화된 '꿈의 메모리'로 불린다.
최근 12년간(2012~2023) 한국, 미국, 중국, EU, 일본 5개 특허청에 출원된 강유전체 소자 특허를 분석한 결과, 한국이 395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주목할 점은 이 분야의 특허 출원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단기적인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소재와 소자 단위의 근본적인 혁신을 통해 미래 기술 표준을 선점하려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현재의 기술 격차를 벌리고, 강유전체로 미래 시장의 씨앗을 뿌리는 투트랙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