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레이스의 진짜 변수는 GPU가 아니라 전력이다
AI 패권 경쟁의 핵심 자원이 이제 반도체에서 전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2월 5일 Bloomberg Green은 “AI 레이스의 승패는 에너지 접근성에 달려 있으며, 이 점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중국이 향후 5년간 3.4테라와트(TW) 이상의 발전 용량을 추가할 계획이며 이는 미국의 약 6배에 달한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근거로 한 분석이다.
중국은 AI 수요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에너지 인프라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확충해왔다. 2025년 기준 풍력·태양광 누적 설치 용량은 1.84TW에 달해 처음으로 화력발전 용량을 넘어섰다. 2025년 한 해에만 430GW의 재생에너지 설비가 추가되며 전년 대비 22% 증가를 기록했고, 현재 약 300GW의 예비 발전 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 예비 용량은 2020년대 말까지 400GW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러한 여력 덕분에 중국은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 시 전력 확보라는 병목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완화된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미국의 구조적 딜레마: 규제, 노후 인프라, 공급 부족
반면 미국은 전력망 접속 승인에 수년이 소요되는 규제 체계, 노후화된 송전 인프라, 에너지 믹스 전환 지연이라는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NERC의 2025년 장기 신뢰성 평가(LTRA)에 따르면 2026~2035년 사이 여름 최대 수요는 224GW, 겨울 최대 수요는 246GW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24년 전망치 대비 69% 이상 확대된 수치이며,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AI 데이터센터 수요에서 비롯된다. 보고서는 신규 발전 설비 확충 속도가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을 명시하며, AI 인프라 증설이 지속되는 한 이러한 공급 격차는 구조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응해 미국 정부도 제도 개선에 나섰다. 미 에너지부(DOE)는 2025년 10월 FERC에 데이터센터의 신속한 계통 연계를 요청했고, FERC는 자체 발전 설비와 부하를 함께 신청하는 ‘하이브리드 시설’에 대해 심사 기간 단축 및 우선 처리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12월에는 PJM에 데이터센터의 발전소 직접 연결(colocation)을 위한 명확한 규칙 마련을 지시했다. 이는 탈탄소라는 장기 목표와 AI 인프라 확장이라는 단기 수요 사이에서, 미국의 에너지 정책이 보다 현실적인 공급 확보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빅테크의 전력 확보 전략
AI 경쟁의 무대가 칩에서 전력으로 이동하면서, 빅테크 기업들 역시 안정적이고 대규모의 전력을 빠르고 저렴하게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원자력: 장기 계약으로 안정성 확보: 빅테크 기업들은 대규모 원자력 발전 용량을 계약하며 전력 전략의 중심에 원자력을 두고 있다. Meta는 6.6GW 규모 계약을 체결했고, Microsoft는 160억 달러를 투입해 20년간 837MW를 전량 인수하기로 했다. Amazon도 1,920MW 장기 계약을 확보하는 등, 수십 년 단위 전력 조달이 본격화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대규모 PPA 확대: Meta는 누적 12GW 이상의 재생에너지 계약을 확보했으며, Amazon은 독일 해상풍력 등에서 790MW 이상을 추가로 확보했다. Google 역시 47억 달러 규모의 청정에너지 기업 인수를 통해 전력-데이터센터 공동 개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탈탄소와 전력 확보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핵심 축이다.
오프그리드 가스 발전: 즉각적 수요 대응: 전력망 접속 지연을 우회하기 위해 오프그리드 가스 발전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Chevron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 Permian 지역에 현장 가스 발전 설비를 개발 중이며, Google도 탄소포집이 결합된 가스 발전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이는 즉각적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다.
에너지 인프라 투자 사이클의 구조적 전환
그동안 AI 투자 이야기는 주로 GPU 성능이나 모델 수준, 소프트웨어 플랫폼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누가 더 빠른 칩을 만들고, 더 똑똑한 모델을 학습시키느냐가 핵심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026년에 들어선 지금, 분위기는 분명히 달라졌다. 이제는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AI 확장의 속도를 좌우하는 현실적인 변수로 떠올랐다. 아무리 뛰어난 반도체와 알고리즘이 있어도,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하면 대규모 확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중국의 대규모 에너지 공급 능력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이 반도체 수출 통제와 기술 봉쇄를 통해 우위를 유지하려 하지만, 에너지라는 물리적 기반까지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AI 패권 경쟁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과 인프라를 포함한 종합적인 산업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가스 발전 설비와 전력망(그리드)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입는 구조다. 실제로 Siemens Energy는 2026~2027년 동안 가스터빈과 그리드 기술 생산 확대를 위해 미국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주요 산업 플레이어들이 현재의 흐름을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구조적인 전환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PG&E 역시 2030년까지 730억 달러 규모의 전력망 업그레이드 계획을 발표했으며, Vistra는 텍사스의 Comanche Peak Nuclear Power Plant에서 20년간 1,200MW를 공급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전력 인프라를 둘러싼 투자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중국의 에너지 인프라 우위는 미·중 AI 경쟁의 초점을 기술력 자체에서 ‘인프라 확보 능력’으로 옮겨가게 만들고 있다. 이는 투자자 입장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단순히 반도체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에너지 인프라 관점에서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유틸리티 산업이 수십 년 만에 대규모 자본 지출 국면에 진입한 지금, 전력 인프라 밸류체인 전반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AI 투자에서 점점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