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뒤흔드는 계산된 긴장
최근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군사적 긴장과 외교 협상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적 국면에 들어섰다. 강경 발언과 군사적 움직임이 잇따르며 금융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지만, 동시에 핵 협상 채널은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상태다. 이 점이 중요하다. 현재 상황은 단순한 감정적 충돌이라기보다,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압박과 신호 교환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은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일정 시한과 조건을 암시하며 압박 수위를 조절하고 있고, 이란은 해상 훈련과 군사적 시위를 통해 대응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군사적 긴장과 외교적 접촉이 병행되는 구조는 ‘전쟁 직전’이라기보다,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계산된 긴장 관리 국면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시장은 협상의 의도보다 압박의 강도와 돌발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가격 변동성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호르무즈 해협: 불확실성이 가격을 움직인다
이번 국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변수는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이다.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이 해협은 단순한 분쟁 지역이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의 동맥에 해당한다. 완전 봉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시장은 실제 봉쇄 여부가 아니라 ‘봉쇄 가능성’ 그 자체를 가격에 반영한다.
최근 브렌트유는 배럴당 70달러를 상회하며 6개월 만의 고점권을 형성했다. 이는 실제 공급 차질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공급 리스크 프리미엄이 가격에 반영된 결과다. 해협에서의 군사 훈련이나 부분적 통제 시사만으로도 유가는 즉각 반응한다. 실행보다 위협이 더 강력한 가격 결정 요인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이란이 해협을 전략 카드로 활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완전 봉쇄는 자국에도 부담이 크지만, 위협만으로도 국제 유가를 자극하고 협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시장은 이 미묘한 균형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 결과 에너지 가격에는 상시적인 지정학적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리스크 프리미엄의 일상화
최근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단순한 방향성 베팅이 아니라, 반복되는 급등락이 특징적이다. 협상 진전 신호가 나오면 유가는 안정세를 보이고 위험자산이 반등하지만, 군사적 긴장 고조 소식이 전해지면 다시 급격한 리스크 오프 흐름이 나타난다. 금 가격 강세와 안전자산 선호도 이와 같은 패턴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자산 가격에 내재된 구조적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에는 충돌 발생 시 단기 스파이크 형태로 반영됐다면, 현재는 충돌 가능성 자체가 상시적인 가격 요소가 되었다. 즉, 리스크 프리미엄이 일상화된 상태다.
여기에 더해 시장이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꼬리 위험(Tail Risk)’이 존재한다. 전면전 가능성은 낮지만, 해협 통제나 제한적 군사 충돌이 현실화될 경우 그 충격은 상당하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재편, 원자재 가격 급등, 인플레이션 압력 재확대, 통화정책 경로 수정 등 파급효과는 광범위하다. 낮은 확률이지만 높은 충격 강도를 가진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한, 시장은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최근 금 가격과 변동성 지표의 움직임은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 대한 부분적 헤지를 시사한다.
특히 유가 상승 압력은 단순한 원자재 가격 문제를 넘어 인플레이션 기대와 통화정책 전망에 영향을 미친다. 원유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금리 인하 기대는 후퇴할 수 있으며 이는 주식·채권·환율 시장 전반의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안이 에너지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 이유다.
방향이 아니라 구조를 보라
현재 국면에서 가장 위험한 접근은 미국과 이란 중 어느 한쪽의 승패를 예측하려는 단선적 시각이다. 본질은 ‘협상을 위한 군사적 압박’이며, 이 줄다리기는 단기간에 종결되기 어렵다. 그 사이 시장은 협상 결과가 아니라 협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가격에 반영한다.
따라서 투자 전략의 초점은 방향성 예측이 아니라 리스크 구조 이해에 맞춰야 한다. 유가의 70달러대 유지 여부, 안전자산 흐름, 기대 인플레이션과 금리 경로 변화는 핵심 모니터링 변수다. 특히 지정학적 리스크가 금융시장에 구조적으로 내재화되는 국면에서는 변동성 자체가 전략적 자산이 된다.
지금은 결과를 맞히는 게임이 아니다. ‘계산된 긴장’ 속에서 시장이 어떻게 불확실성을 가격에 반영하는지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수처럼 작동하는 시대에는, 방향성보다 구조를 이해하는 투자자만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